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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의 추억
글쓴이 : 평화재…     날짜 : 14-11-03 10:32     조회 :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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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의 추억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해버린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기. 그 때까지 반공 교육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었다. 우리는 6.25만 되면, 전쟁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북쪽의 ‘괴뢰군’들과 만나면 꼭 승리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적이 되고 말았던 ‘중공군’을 혐오했었다. 우리는 ‘이승복’ 어린이를 영웅처럼 생각했었다. 1년에 한번 씩 강원도 평창에 있는 이승복 기념관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외쳤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곳에서 또 다시 북측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우리는 ‘강재구 소령’을 기억하며 살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훈련을 하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부하대원들을 살리고 전사한 위대한 영웅을... 우리는 ‘똘이장군’의 팬으로 살았다. 본 실체가 늑대였던(북측 사람들이 가면을 벗으면 모두 늑대 혹은 여우가 되었다.) 북측의 ‘괴물’들과 싸우는 똘이장군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영웅이었고, 슈퍼맨과 같은 존재였다. 똘이장군은 언제나 악의 무리였던 늑대와 여우를 잘도 찾아냈고, 또 항상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던 ‘북한’을 배웠다. 그곳은 자식들이 부모님을 신고하고, 서로서로를 믿지 못하며 다섯 집마다 감시 체계가 형성된 ‘5호담당제’가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난 서울시 상계동에서 태어났다. 지금이야 상계동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 선 인구 밀집지역일지 몰라도, 당시엔 논밭만이 가득했다. 집 앞으로 나가 개천하나를 건너면 바로 경기도 의정부였고, 군부대가 보였다. 뒷산에 올라가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주 근사하게 생긴 폭포가 절경을 이루었다. 그곳에서 난 개구리, 도롱뇽을 자고 놀았으며 가끔씩 뱀이 나타나면 무서워서 줄행랑을 치곤했다. 이곳은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였고, 가장 좋은 놀이터였다. 시간만 나면 이 뒷산으로 놀러가곤 했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폭포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삐라(대북전단)’가 기다리고 있었다. 북측에서 풍선을 날려 뿌리는 것으로 배웠던 그 삐라가 휴전선과는 거리가 제법 있었던 우리 동네까지 날아온 것을 그 당시엔 전혀 의아해 하지 않았다. 북측으로 넘어오라는 그들의 이야기는 내 눈에,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삐라를 하나하나 찾게 될 때마다 나의 학용품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기쁘기만 했다. 당시, 나에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그저 나쁜 나라에 불과했지만, ‘북한’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공책과 연필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동네 뒷산이 가까웠던 나는 누구보다 많이 삐라를 주운 때도 있었으며, 한 봉지 안에 가득 찬 삐라는 나에게 몇 권의 공책과 연필, 색연필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선심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가끔씩 ‘남한’으로 넘어오라는 삐라를 줍기도 했다. 기존에 봤던 삐라와는 너무 달라 선생님께 가서 물어보면, 잘못 만든 삐라라고 얘기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진짜 삐라가 아니기 때문에 학용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셨다. 그 때만큼은 정말 ‘남한’을 미워했다.
 나에게 삐라는 무섭거나 혹은 관심 없던 ‘북한’이라는 나라에게 한번쯤은 고마운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던 삐라의 추억은 아마도 그 시대로 종결된 것만 같다. 최근에 회자되는 삐라는 남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북 단체가 주선하고 있는 삐라 살포는 북측을 자극하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으며, 휴전선 근처 지역에서 서로를 겨누며 발포하는 모습까지 그려졌다. 북측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삐라 살포 행위 중지를 요청하고 있으며, 남측 정부는 민간단체 주도의 행위까지 간섭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남측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 그러나 이 자유가 방종의 형태로 나타날 때, 정부는 강력하게 특정한 행위들을 제약하고 있다. 물론, 그 ‘특정한 행위’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역대 정권마다도 달랐다. 따라서 남측 정부의 입장은 일리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 정부가 과연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 행위에 관여 할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든다.
 지난 11월 1일 북측은 삐라 살포 행위에 대한 비난을 거듭하면서 남북 간 대화를 거부했다. 다음 날 남측 정부는 삐라 살포에 대한 왜곡된 해석과 남북 대화 거부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일단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은 무산되었다. 삐라 살포는 결국 우리에게 대화 단절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떠한 형태로든 고마움을 느꼈던 그 삐라의 추억은 이제 점진적으로 물꼬가 트려했던 남북의 대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서로의 대화가 재개되려면 남측은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 행위를 제지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북측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방하는 행위에 대해 자제해야 할 것이다. 삐라의 추억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삐라가 지금과 같은 장벽의 이미지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일 시대에 소싯적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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