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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보수주의, 보수주의자
  글쓴이 : 서광선     날짜 : 08-10-06 14:27     조회 : 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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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란 말에는 무엇을 지킨다는 뜻이 있다. ‘보수’의 반대말은 ‘진보’이다. ‘진보’란 말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보수주의자가 무엇을 지킨다고 한다면 진보주의자는 그 무엇을 지키지 않고 변화를 지향하고 달라지게 만들려고 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지난날의 가치나 문화나 이념이나 생활 관습을 지키려고 한다면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새로운 이념을 창출하며 생활 관습을 바꾸어 가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서 볼 때, 보수주의는 과거 지향적이고 과거와 현재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념인데 반해, 진보주의는 미래 지향적이고 과거와 현재의 기득권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도전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정치 세력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왕권이 바뀌어, 새 왕이 들어서면, 신하들의 한 편에는 선왕이 하던 치세와 정치와는 좀 다른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혹은 ‘개혁’파가 있는가 하면, 왕권 대대로 이어온 대로, 전통을 지키고, 선왕이 한 그대로 이어받아 정치를 해야 한다는 ‘보수’ 혹은 ‘수구’파가 있어 왔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진보파를 반대하고 옛 방식대로 옛 가치와 이념을 그대로 해야 한다는 보수파를 ‘반동’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 개화기 시대의 예를 들어도, 밖으로 부터 밀려들어 오는 외세에 대해서 나라의 문을 잠그고 쇄국정책을 주장하며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 하려는 세력을 ‘수구파’라 했고, 반면에 나라의 문을 열고 해외의 문물을 들여오고 ‘근대화’하자는 세력을 ‘개화파’, ‘진보’라 불렀다.


정치적 보수주의


‘보수’란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나 가치를 귀중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지키겠다는 생각인데, 새로운 가치나 이념에 대한 반동이다. 서양 역사에서 보수주의란 말이 생긴 것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에서 부터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의 시대가 전개되었을 때,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서 왕권을 옹호하고 군주 봉건 시대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그 과거의 시대의 가치를 주장하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운동에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말한다면, 프랑스 민주주의 혁명은 진보적 가치이고 왕권정치로의 복고는 보수적인 이념이라 하겠다. 보수가 과거로의 회귀와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면, 진보는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내세운다.


가장 가까운 우리의 70년대와 80년대를 살펴본다면, 전두환 장군이 이끈, 이른바 ‘신군부’세력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을 유지하고 복구하려는 ‘보수’세력이라 할 수 있겠고, 5.18 광주항쟁과 이를 이어 받은 1987년의 민주항쟁은 유신 시대로부터의 단절을 현실화한 ‘진보’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의 정당 정치에 있어서도 보수 정치 세력은 과거의 회귀를 주장하여 왔으며, 진보는 과거와의 단절과 미래 지향적인 이념과 가치를 제시해 왔다. 과거와의 단절은 군사 독재 정치 행태의 청산이며, 미래 지향적인 가치는 철저한 민주주의의 창달이라 하겠다.


오늘날, 보수정당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때, 우리는 한국 정치가 "보수화"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때의 ‘과거’는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인가? 어떤 시대를 지속 시키고 어떤 가치를 보수하려고 하는 것인가?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신군부 세력이 유지하려고 했던 그 시대의 가치와 이념, 유신독재의 이념을 이어 받으려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단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이념이나 정책들로부터 단절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진보세력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보수의 기치를 내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 정부는 "선진화"를 구호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복고적이고 과거로 퇴보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가치와 민주화를 향한 역사에 대한 반동인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권으로의 정권교체 이후, 공교육에 있어서의 역사 교과서 문제가 제기되면서 부터 살펴본 우리나라 지성계의 보수성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의 이념과 가치와 정책에 대한 찬양과 낭만적 회고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보수성이 가지는 옛날에 대한 흠모와 찬양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적어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역사학자들과 일부 지식인들은 이승만 시대와 분단 고착의 혼돈의 시대를 찬양한다. 나아가서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를 한국 근대화의 발전과 성장의 시대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보수’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 같다. 조선시대의 왕권주의 혹은 입헌군주주의와 같은 이념이나 가치를 찬양하는 데 이르는 것 같지는 않다. 3.1 운동은 일본 제국주의 통치로 부터의 독립 운동 만이 아니었다. 그 정치이념은 철저한 민주주의였으며, 왕권의 역사로 부터의 분명한 단절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보수적 지성인들은 3.1 운동의 자주 독립과 민주주의 선언의 이념과 가치를 계승하고 보수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보수적 지성인들은 반자주적이고, 반독립적이고, 그러므로 반민족적이고, 나아가서 반민주적이라는 규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보수주의


경제정책을 논의할 때도 정치 이념이나 가치 못지 않게 ‘보수’와 ‘진보’가 거의 이분법적으로 갈라지고 갈등한다. 경제를 말할 때도 정치에서 말하는 것만큼, 민주주의의 두 가지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갈등과 균형이 ‘성장’과 ‘분배’라는 말로 논의된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자유시장 경제 이념과 정부 개입의 정책이 대결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수’는 자유시장 이론을 주장하는 쪽이고, ‘진보’는 정부 주도형이거나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주장하는 쪽이라고 한다. 보수적 자유시장 이론의 원조는 영국의 아담 스미스이고 진보의 원조는 케인즈이다.


미국의 예를 들면, 1930년대 초 미국의 대공황은 자유시장의 비극적인 결과라고 한다. 미국학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1930년대 이전의 미국경제는 호황을 이루었고 부자의 나라라고 자부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빈부의 격차가 당시의 유럽 어느 나라 보다도 심했다고 한다. 자유시장에 맡기고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 성장을 조절하고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고 평등한 나라를 기대했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 공황이 시장을 파괴했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 딜’ 정책이 시행되었다. 나라의 경제를 시장에게만 맡길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손에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이는 손, 정부의 강력한 경제 정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세금을 올리고, 나라가 하는 국책 건설공사를 시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각종 보험을 신설하고, 국립대학을 세우고, 공교육을 강화하는 ‘복지국가’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경제는 1970년대 초까지 호황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좁아지고, 경제 성장과 아울러 분배의 정의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진보’의 시대, 혹은 경제학자 케인즈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러나 1970년대 닉슨과 레이건 대통령을 당선시킨 공화당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고전적 자유시장주의 시대를 넘어서 시장의 확대와 자유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먼저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을 주장했고,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성장 보다는 분배를 강조했다고 하면,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은 분배 보다는 성장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면,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은 복지국가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이유와 반공을 내세워 반대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혼돈이 생기는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의 한계를 말하고, 오히려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시장’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주의자’들과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공통점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라 하겠다. ‘정치적 보수주의자’들과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의 공통점은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하는 점과 분배 보다는 성장을 내세우고 고전적 자유시장주의를 보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율배반적인 것이 많은 것 같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고도 성장이었다. 경제적 고도 성장을 향하여 정부는 거대하고 강력한 독재 정부가 되어야 했고 강력한 성장 지향적인 정책을 썼고, 이를 위하여 민주주의는 ‘유보’되어야 했다. 우리는 ‘개발 독재’의 성과를 오늘날 까지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 이명박 정권의 ‘보수’는 ‘개발 독재’로의 회귀인가? 강력하고 거대한 정부가 경제를 이끌어 가던 시대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 프랜드리’란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각종 정부 규제를 풀어 준다고 한다.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정책도 내 비친다. 진일보해서 부동산에 붙이는 ‘종부세’도 많이 약화하여 부동산이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덜 내는 ‘세금 감면’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방향은 ‘개발 독재’시대의 경제정책은 아닌 듯싶다. 그러면서도 급해 지니까 시장에 개입하려 들고 외환을 시장에 내어 놓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안 보이고, 믿음이 안 간다고들 한다. 정말 이명박 정부는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지난달부터 미국 금융시장은 요동하고 붕괴하고 망해 가고 있지 않은가? 부시 정부는 간신히 정부 개입 승인을 의회로 부터 받아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정부 개입을 내세우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올려 받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평등’의 경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 살리기를 대선 구호로 내 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은 부자들 살리기가 아니라 모두를 살리기의 경제 정책, 가난해도 골고루 행복하게, 부자가 되어도 골고루 부자가 돼서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경제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정신으로 돌아가는 ‘보수’적 태도가 아닌가 싶다.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 문화적인 면, 종교에 있어서의 양 진영, 그리고 이념적인 문제에서의 양분화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있어서 과연 ‘보수’라는 가치와 ‘진보’라는 가치들이 양자택일의 선택의 문제인가, 아니면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문제인가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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