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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종교 그리고 불교와 기독교
  글쓴이 : 서광선     날짜 : 08-09-01 16:42     조회 : 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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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여름, 촛불에 천주교와 개신교 성직자와 평신도의 대대적인 참여에 이어, 불교 스님들과 불자들의 동참이 있었다. 그런데 촛불이 그 빛을 잃기 시작하자 늦은 여름 더위를 무릅쓰고 그 땡볕에 전국에서 모여든 불교 신자들 10여만 명이 서울 광장을 메우고, “종교화합, 국민통합”을 외치는 ‘종교차별 종식 범 불교도대회’를 열었다. 대회에서는 불교를 차별할 뿐 아니라 탄압까지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 


1970년대 유신 군사 독재정권 시절,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투쟁하였던 일이 기억에 되살아난다. 당시에는 유신정권이 기독교 운동권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면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고, 따라서 기독교는 정치에 간섭하지 말고 교인들의 영혼과 구원의 문제에만 집중하라고 욱박 질렀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일각에서도 “교회에서 예수 믿고 천당 갈 생각만 하면 됐지, 무슨 민주화 운동이니 하며 정치에 간섭하고 노동운동에 가담 하느냐”는 성난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한국의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했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공헌하여 왔다고 자부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기독교계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그리고 이 신앙운동을 ‘민중 운동’으로 규정하고 이 와중에서 ‘한국 민중신학’이 탄생하는 동안, 불교계에서는 젊은 불교학자들 간에 ‘민중 불교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보적 기독교 신학자들과 불교 학자들 사이에 이 때 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교류했던 것은 없었던 것 같다. 학문적인 토론의 장이 있었을 뿐 아니라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연대하는 모임들이 활발하였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안에서 이른바 ‘타 종교와의 대화’라는 운동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타 종교와의 대화’라는 기독교 중심의 운동을 우리나라의 ‘종교 신학자’ 들은 ‘불교와의 대화’ 혹은 ‘불교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비판하면서 ‘종교 다원화’시대를 강조하고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 그리고 타 종교 신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권장하는 운동으로 벌였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보수주의자들, 특히 근본주의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감리교 신학대학의 학장이었으며 저명한 조직신학자인 변선환 박사는 불교 연구에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낸 분으로서 불교와의 대화와 이해를 촉구해 온 목사로 유명했다. 그는 많은 글과 강연에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하는 독일 천주교 신학자 한스 큉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감리교회의 ‘종교재판’을 받고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신학대학 학장직에서 파면당하기 까지 한 ‘종교적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오늘날 종교의 문제가 서울 광장에서 쟁점화 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종교 사이의 관계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와 정치의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의 문제는 이 두 문제를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개신교, 특히 한국의 장로교회의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타 종교 배타적인 기독교 중심주의자이고 불교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의식을 못하거나 하려 하지 않고, 차별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 거의 다 이명박 대통령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타 종교 배타주의자들이다. 내가 믿는 기독교만 옳고, 내가 다니는 교회에만 진리와 구원이 있다고 배우고 가르치고 믿고 있을 정도로 독선적이다. 심지어 같은 개신교 안에서도, 장로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나, 목사들은 감리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헛수고”한다 “천당에 가지 못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 개신교 사람들이 천주교에 대한 태도를 편파적으로 가지는 것은 예상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리 한국 고유의 종교일지라도, 고작해야 “미신”이고 “우상을 섬기는” 종교라고 비하할 정도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렇게 까지 된 것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 와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한국의 불교 신자들과 유교 신자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과도한 배타주의적 선교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무식한 것 이상으로, 기독교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서 무식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덮어 놓고 한국 종교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므로 한국의 고유 전통종교를 타파하고 개화된 문명 종교인 기독교에 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개중의 선교사 중에는 한국 종교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해가 깊어져 한국 종교 학자가 된 선교사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경우 기독교 근본주의적 보수 신학에 입각해서 기독교 제일주의, 개신교 제일주의에다가 배타적 독선주의 신앙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이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불교나 유교에 대해서 이해를 하거나 공부하려고 하기는커녕 이를 비하하고 무시하고 배격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할 정도가 된 것이다. 불교는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에 가서 보는 절이나 사월 초파일이 공휴일이라는 것, 가끔 양복 입지 않은 스님들 만나는 것을 전부로 알고 불교의 가르침이 부처님에게서 왔으며, 불교의 오묘하고 심오한 교훈이나 생활의 지혜와 영성, 그리고 인간과 우주에 대한 진리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너무도 무식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거의 모두 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왜곡된 ‘선교관’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유태교의 하나님을 이어 받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 믿어야 구원을 얻고 천당에 간다는 교리를 철석 같이 믿고 있다. ‘하나님’이란 말은 본디 우리말이 아니라서 ‘하느님’이라야 맞는데, ‘유일신’ 기독교의 신을 강조하노라고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개신교의 성서와 찬송가에 넣었을 정도이다. 예수만 믿어야만 산다고 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부처를 믿거나 공자를 따르는 것을 배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서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배척하고 차별하는 것은 예수의 정신이 아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성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예수는 편협한 유대 종교인이 아니었다. 다른 종교, 다른 종파에 속하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대화하고 예수 당시의 종교적인 언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포용주의자였다.


그럼으로, 예수를 믿는 오늘의 기독교인이 취할 태도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기 자신의 믿음에 충성하고 자기 자신이 믿는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가지도록 공부하는 일이다. 그래서 독선적이 되자는 것이 아니고 겸허하게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진솔하게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자비롭고 인자한 삶이다. 둘째는 타 종교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 종교에 담긴 진리를 헤아리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내가 믿는 종교 말고도 다른 종교가 있다는 생각, 나의 주위에는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일이다. 나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이웃의 신앙을 폄하하거나 업신여기는 언동이 있나 살피는 조심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의 몸가짐에 대해서 의식하는 품위 있는 정신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뿔났다”고 하게 된 쟁점의 두 번째 문제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 문제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정부가 기독교를 박해한다고 문제가 되었고, 기독교가 정치에 너무 간섭하고 정부에 반대하고 저항한다고 하면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원칙을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같은 정권하에서 기독교의 다른 한 쪽에서는 군사정권을 지지하고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면서 ‘조찬기도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기독교가 군사 독재 정권을 옹호하고  축복하는, ‘정교유착’현상도 있었는데, 이는 정권이 내세운 ‘정교분리 원칙’과 정반대되는 행태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로 오늘날, 한국의 불교 지도자들은 종교의 입장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고 이를 ‘법제화’하자고 까지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된 사연은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 편향적인 인사정책과 국정운영으로 한국의 다른 하나의 거대 종교인 불교를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종교와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포하고 있고 어떤 특정종교에 대해서도 특혜를 주어도 안 되고 차별을 해서도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에 특혜를 주고 있고 불교는 차별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것은 분명히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법정신은 정교분리 원칙인데 이를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가 정치에 간여하고 한 정권의 비리에 대해서 들고 일어나 비판하고 감히 반정부 운동을 펼친다고 해서 ‘정교분리 원칙’을 들고 나와 탄압할 수 없다. 이것은 종교와 신앙, 양심의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교분리 원칙은 정치가 종교를 탄압하거나 차별하거나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헌법상의 ‘약속’이다. 그 반대는 아니다. 정교분리 원칙은 종교가 신앙과 양심상 정치가 잘 못되거나 인권을 유린하는 일에 대해서 발언하고 비판하고 간섭하고 심지어 반정부 운동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오히려 이러한 국민적 권리는 다른 시민적 권리와 함께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 자유 보장’의 헌법정신이다.


불교계가 스스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선진화의 일환으로 종교화합의 문제와 국민통합의 문제를 들고 나온 이상, 기독교와의 대화와 화합과 연대의 길이 트이게 되기를 바란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종교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정책 개발을 위하여 열린 마음으로 종교계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건전하고 진지한 기회를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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