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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문화제' 읽기
  글쓴이 : 서광선     날짜 : 08-06-23 10:57     조회 : 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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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청소년들-중.고등 학생들이 청계천 광장에 몰려들어 촛불이 든 종이 컵을 들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면서 시위 아닌 시위를 시작한지 40일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들의 시위가 후반에 들어가면서 청년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청장년들과 어린아이들을 유모차에 실은 엄마 아빠들이 시위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미국정부와의 전면적 재협상 요구에 대응하는 정부의 발언들과 행태에 대하여 언론과 시위대와 인터넷은 "쇠고기" 문제를 넘어서 100일이 겨우 넘은 이 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와 불신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많은 논객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촛불 문화제"에 제공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불순한 배후세력"이  이명박 정권에 불만이 있는 불순한 세력을 충동질해서 아이들이 거리에 나서서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격분하고 있다. 이 정권이 집권 초두에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던 터에 이런 일이 터졌다고, 이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쪽에서 까지 이 정권을 나무라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촛불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이고 자진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청계천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고, 결코 누구도 등을 떠밀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요사이 한국 사람 치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누가 배후세력에 의해서 조정되고 또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어 정부의 시책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항변한다.


나는 촛불 집회와 행진을 현장에서 한두 번 지켜보기도 하고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참여적 관찰을 했다. 행진하는 행렬을 지켜보면서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에 손을 잡고 "이 명박은 물러가라"고 노래하듯 소리 지르며 지나가는 것에 나는 알 수 없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4.19에서 5.18 그리고 6.10


나는 4.19때 학생들의 행진을 미국의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1964년 한일 정상화 반대 운동을 전개한 한국의 대학생들의 절규를 지켜본 사람이다. 그리고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과 1972년 유신 선포에 대한 한국 대학생들의 반대시위를 목격하고 교수의 한사람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유신정권의 계엄령과 비상조치에 반대하는 수많은 반대시위를 체험하며 살아 온 세월이 나의 몸과 마음에 배어 있다. 데모하는 학생들은 돌과 화염병을 전경들을 향해서 던지고, 전경들은 최루탄을 발사하고, 학생들과 시민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입을 막고, 쓰러지고 일어나서 도망 치고...그러면서 70년대를 지새웠다. 대학은 한 학기 공부를 채우지 못하고 중간시험이 끝날 무렵에는 학교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닭장 차"라고 불리웠던 경찰차에 강제로 실려, 그 안에서 구타당하고 발길로 채여 가면서 구치소로 연행되기도 했다. 학생들의 구호는 한결같이 "유신정권 물러가라"였다.


우리의 1970년대는 그렇게 학생 시위에서 연행과 고문과 분신과 호를 거듭하는 긴급조치로 지새웠다. 1979년 10월의 어느 날, 그 무서운 대통령이 자기 최 측근인 중앙정부부장의 총탄에 쓰러졌다. 유신은 물러가고 민주주의가 살아나는 줄 알았으나, 우리나라 군부는 다시 정권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가로 막았다. 대통령은 유신 식으로 장충단 체육관에서 천여 명이 모여서 90몇 프로의 찬성표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5공화국이라고 이름 했다. 이어 5월 18일 광주에서는 치열한 민주 항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5.18은 6.10 항쟁으로 이어져 1987년 군사 독재 정치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 까지 우리는 치열했고 엄숙했고 심각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다. 우리 발길은 무시무시한 무쇠 전차와 장갑차에 기관총을 장진한 군인들이 막아서 있었다. 일단 시위가 시작되면, 그것은 작전이었고, 폭력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하였다. 비폭력, 평화적 시위는 말로도 행동으로도 용납되지 않았다.


2008년 5월의 평화 시위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8년의 5월과 6월의 서울의 광장에는 정부의 시책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촛불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이 "뿔났다"는 말이 난무하고 "물러나라"고 소리 지르고 있는데, 대통령과 장관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 뭔가 잘못했다고, 잘해 보겠노라고, 국민을 섬기겠노라고 말하고 있다.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대학생들이 깃발과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고, 길가에 선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혈기를 부리면서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는 전경들에게 대들거나 "닭장차" 위에 기어 올라가고 타이어에 펑크를 내려고 하면, 데모대들은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고, 전경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전경들도 폭력은 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홧김에 여학생을 모질게 군홧발로 밟아 버린 전경은 처벌 까지 받았다고 한다.


20년 전에는 폭력 전경이 처벌 받았다는 말, 들어 본적이 없다. 민주화 되기전, 20년 전에는 시위하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비폭력, 비폭력"이란 말, 들어 본적이 없다.


촛불 문화제, 2008년 5월과 6월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민운동은 민주화된 20년 동안의 민주주의적 훈련을 쌓은 성숙한 정치 운동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우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 거리를 행진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얼굴과 몸짓을 보아라. 너무도 자유롭다. 너무도 두려움이 없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거침없이 속마음을 터놓고, 하고 싶은 말을 진솔하게 쏟아 놓고 있었다.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연설이 있고, 야유가 있고 유모가 있고 폭소가 터지고...이건 데모를 하는 건지 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옛날, 20 여 년 전, 머리를 싸매고 죽을 각오를 하고 치열하게 데모대에 나섰던 생각을 하면, 오늘의 시위는 시위도 아니다. 30여 년 전에 대학생들이 발굴해서 공연한 탈춤놀이를 오늘 서울의 광장에서 다시 보는 것 같다. 양반들을 놀리고, 근엄한 종교지도자를 놀리면서 스스로를 비웃는 탈놀이를 지켜보며 흥분하는 동네 사람들이 오늘의 서울의 광장에 모여서 “고소영"을 놀리고, 미국 쇠고기는 "강부자"들이나 먹어라 우리는 안 먹겠다고 소리 지르며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IT와 논술고시와 “한류”


많은 이들이 오늘의 젊은이들의 정치행태는 지식 정보를 유통시키는 "IT" 즉 휴대 건화와 인터넷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우리는 덕분에 우리가 몰라도 될 것 같은 "쇠고기"와 "도축"과 소의 척추와 소의 내장과 소의 "월령"등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지식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한 두 사람, 혹은 부유하고 권세 있는 계층만이 독차지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정보, 알만한 지식을 삽시간에 공유하게 되었다. 나라의 어른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하고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순식간에 다 알게 되어 버렸다. 이런 세상에 국민을 속이거나 조정하거나 "세뇌"시킬 수는 더욱 없게 되었다.


나는 어떤 방송사의 요사이 중학교 학생들이 촛불 모임에 나가는 이유를 묻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놀라운 것은, 학생들이 학교 선생들, 특히 전교조 선생님들 말을 듣고 나가거나, 부모님들이 가자고 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문을 읽고, 인터넷을 보고 나갔다는 것이다. 신문도 "한겨레"만 본 것이 아니라 조.중.동도 다 보고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와 비교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을 선택했다는 데 놀랐다. 이게 오늘의 십대 소년 소녀들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지난 20년 동안의 "논술시험“ 에 대비한 글쓰기 연습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 입시에 도입한 논술 시험이 이러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과 논리의 전개 그리고 표현력을 길러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OX 답안이나, 연필 굴리기로 5문항에서 한가지 정답 고르기나 암기식 교육으로는 이런 추리력과 상상력을 길러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비판하고 판단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서운 아이들이 된 것이다. 폭력을 휘둘러서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촛불들의 노래에 감탄하고 있다. 광장에는 수많은 희한한 노래가 번지고 있다. 그 창의력과 상상력은 "금지 가요" "운동권 노래"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울러 퍼지고 있다. 온 세계에 "한류"를 퍼트린 한국의 재주꾼들이 서울의 광장에 모여든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의 예술성이 정치의 광장에서 날개를 펴고 있다.


“촛불” 이후의 한국 정치 어디로?


우리의 촛불들은 어디로 번져 나갈 것인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 손이 이미 뜨거워졌고, 화상 까지 입고 있다. 이 정치적 열기를 우리는 어떻게 수렴하고 어떻게 정치적 생명과 생활로 승화 혹은 육화할 수 있을 것인가?


"비폭력, 비폭력"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나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 옹과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상기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동과 오늘 우리 서울 광장의 비폭력 운동은 많이 다르다. 저들의 운동은 비폭력적이었으나, 조직되어 있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간디의 경우 인도의 영국제국주의에 대한 독립운동이었고, 킹의 경우 미국의 인종차별 종식이었다. 그리고 운동의 행동이 통일되어 있었다. 그 목소리는 통일되어 있었고, 해방운동이었다. 현대식 시민운동의 범주에 속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2008년 서울의 촛불 운동은 탈현대적 (Post modern)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정치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도 마다하는 직접 민주주의이기도 하고, 민중민주주의로도 보이고, 누군가가 “촛불”을 비하하는 말로 한 것처럼 "천민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인구 1%를 위한 정책에 반대하는 민주주의라면 ‘천민’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촛불”들은 한목소리 만 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 화음이 아닌 교향곡의 소리를, 그것도 한사람의 지휘자 도 없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좌우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치공학"으로는 해석하기도 어렵고 해결하기도 어려운 정치운동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정당들도 수렴할 수 없고, 국회로 끌어 드려 협상할 일도 아니고, 시민사회에서 정치화하기도 어려운 초 정치적이고, 초 의회적이고, 일인 영웅적 정치지도자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것이다.


솔직히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촛불"을 해석할 틀을 못 찾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정치적 패러다임으로는 해석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러나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해석과 해결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일로 보인다. 촛불들의 한가운데서, 그들의 정치적 상상력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들의 행진을 보면서 느낀 것과 촛불들 안으로 들어와서 민중들과 함께 탈놀이를 즐기면서 깨닫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땅을 밟고 민중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 네거리를 걸어 보면, 혹시 귀가 뚫리고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서  광 선 (2008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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