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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나
  글쓴이 : 서광선     날짜 : 08-04-22 14:19     조회 : 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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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사극: “왕과 나를 열심히 시청했다. 지난 날의 많은 사극들은 역사를 왕의 시각에서 쓰고 해석하고 연출한 것이거나 왕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엮어 나간 것들이 주였으나, “왕과 나는 달랐다. 이 사극은 그 동안 왕실의 그늘에서 있는 지 없는지 보이지 않던 존재들인 환관 내시들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드라마라는 점이 특이했다. 역사 소설중에 농사꾼이나 노동자나 죄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입장에서 쓴 것이 많지 않은데, 그야 말로 궁중의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천대 받는 내시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 시각에서 궁중 역사를 극화한 것은 특이했고 소중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역사를 사회 지배층인 위로부터보는 시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회 밑바닥으로부터본다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로부터 배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나는 우선 궁중 내시들이 백성들 가운데서도 천대 받는 백성들이었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궁중 밖에서는 물론 궁중 안에서 조차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옛날부터 짐승을 도살하고 가죽 일을 하는 백정들과 무당들을 계급 외 천민으로 대우해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궁중 내시들이 사회적 위치의 애매 모호함과 아울러 때로는 천민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는 것에 놀라왔다. 궁중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임금 앞에 읍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궁중 귀족으로 보이기도 하고 내시의 장 정도가 되면 궁중 바깥 출입을 할 때 귀인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내시도 될 만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역시 내시는 환관으로서 남자 구실을 못하는 페인이고 보니, 사람들이 없인 여기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시들은 대부분 천민 집안 출신들이었다. 그 중 양반 집안 출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몰락한 양반 댁 자제이거나 조실 부모 하거나 가난에 찌들려 올 데 갈데 없는 집 아이들이 남자를 포기하고 내시 교육을 받고 입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신은 천민이지만 적당한 교육을 받아 글을 익히고 무술도 배워서 궁중에서 임금님과 왕실을 모시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 되어 궁중의 떳떳한 일원으로 편입된다는 것이다. 천민의 사회 상승 이동의 통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동양 특유의 사회학적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왕과 나에서는 천민 출신 내시들의 권력의 출처를 적나라 하게 볼 수 있었다. 첫째 궁중에서 왕과 가까이에서 혹은 멀리에서 나마 만날 수 있고 얼굴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왕을 모신다는 것은 바로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둘째 궁중에서 살다 보니 왕실과 가까이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대왕대비 마마, 대비마마, 중전마마, 후궁마마 그리고 수많은 궁녀들과 한 지붕 아래 한 마당 안에서 일하고 산다는 것 역시 권력이다. 이들 중 한 사람하고만 가까워 지면 이들의 권력 투쟁에 이용 당할 수도 있고 이용할 수도 있게 된다. 비단결, 치맛바람에 휩싸여 무슨 사단에 열류 될지 모르는 위기에 빠질 수도 있고 잘 나가면 무슨 벼슬을 하게 될지 모르는 판이다. 권력의 핵심에 있다는 그 자체가 권력인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야심 있는 내시는 간교하게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일찍이 배웠다. 우리 왕과 나의 관객들은 정 내시가 어떻게 감찰부장의 벼슬에 올라가고 그 자리를 이용해서 결국은 중전 (연산군의 폐비 어머니)을 대비 마마와 함께 폐비시켜 독약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극을 만들어 내는 지를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보았다.

 

이조 왕조의 내시들의 권력 남용은 연산군의 비극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 유교의 효() 사상 보다 앞선 동물적인 모성애의 그리움과 복수심으로 연산은 정사를 그르치고 군왕의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파멸한다. 궁극적으로는 내시들의 권력 투쟁으로, 한 왕조는 비극으로 그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내시들은 왕조 마다 왕에 대한 충성이 참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고 아프게 고민한다. “왕과 나의 주인공 김 처선과 그의 양 아버지는 왕 같지 않은 왕에 대한 거역과 반역이 나라를 위한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역도의 편에 서지 않는다. 왕위를 보위하는 자리에 선다. 부패한 왕이라도 왕은 왕이라고 고집한다. 김 처선 역시 연산에게 쓴 말을 직언하면서 왕의 칼에 쓰러진다. 왕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한다 해도, 충신은 그를 거역해서 역도와 혁명에 가담하고 새 하늘을 획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죽음을 달게(?) 받는다.

 

여기서 우리 관객들은 스스로 고민에 빠진다. 김 처선이가 택한 길은 옳은 길인가? 왕이 잘못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는 폭군이라고 믿으면 반역의 무리에 합세해서 새 하늘을 열어야 하지 않았는가? 요즘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대안 교과서가 출판되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조선조의 봉건시대로부터 문명과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인가? 조선조를 고집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었는가 아니면 봉건 후진 사회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근대화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 일본제국주의를 환영했어야 했는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단독 정부 수립과 산업화를 이 땅에 심었다는 공로 만을 내세워 이들이 했던 폭정과 권력의 남용과 인권 유린과 민주주의 후퇴를 관용하는 역사를 다시 쓰기 까지 해야 하나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시 김 처선의 충성은 왜곡된 충성심으로 보인다. 왕을 향한 충성은 백성들 편에 설 때 참 된 충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서 꾸준히 일생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투사들의 충성이 참된 충성이며 애국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승만 정권에 복종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 선 4.19 학생 민주혁명이 우리의 민주화와 근대화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박 정희 대통령의 독재와 권력 남용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이 우리로 하여금 선진화의 길을 개척해 나가게 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19를 기억하는 잔인한 한국의 4월에 왕과 나” “대통령과 나” “권력과 나를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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