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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의 눈물과 분노의 눈물 - 오바마 취임과 용산 참사를 지켜보며
  글쓴이 : 이재봉     날짜 : 09-01-28 11:01     조회 : 2037    
 

1월 20일 어제 하루, 눈물을 두 번이나 흘렸습니다. 대장부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옛 격언이나 사나이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는 요즘 남자용 공중변소의 표어에 비춰보면 저는 대장부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고 사나이 흉내도 내지 못할 것 같군요.


 먼저, 어제 오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TV를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제 집에선 TV도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여기 미국에 와서는 점심식사까지 미루면서 두어 시간이나 TV를 보았지요. 그의 취임사는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지난날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미사일과 탱크만으로 무너진 게 아니며, 미국의 힘만으로 미국을 지킬 수 없고, 미국인들 마음대로 힘을 쓸 권리도 없다는 말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힘을 신중하게 사용함으로써 힘이 커지고, 미국의 안보는 정당성과 모범 그리고 겸손과 절제로부터 확보된다는 말에도 박수를 보냈습니다. 전임 부시 정부의 호전적 일방주의 대외정책에서 벗어나겠다는 공개 선언이니까요.  


미국은 "기독교도와 회교도, 유대인과 힌두교도, 그리고 무신론자들의 나라"라는 말은 우리나라 청와대 장로와 이명박 정부의 기독교인 관리들, 그리고 미국을 추종해온 대형교회 목사들이 꼭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나라 국민들에겐 식량과 식수 확보를 위해 함께 일하며 기아와 빈곤 극복에 힘쓰겠다고 약속함과 아울러, 부자 나라들에게 미국은 나라 밖의 고통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다고 밝히는 대목은 미국이 오만한 제국이 아니라 한국식 국명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 (美國)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고요.


 나아가 “50~60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식당에서조차 밥을 사먹지 못했을 (흑인) 아버지를 둔 사람이 이젠 (대통령이 되어) 가장 신성한 선서를 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a man whose father less than 60 years ago might not have been served at a local restaurant can now stand before you to take a most sacred oath)”는 말을 할 때는 감동의 눈물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 순간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는 많은 청중을 보며 저도 같이 울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탈북자, 조선족, 고려인들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고 베트남, 필리핀, 몽골 등의 출신들에게도 차별과 멸시를 하지 않게 될까요?


 한편, 어제 저녁 인터넷을 통해 본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 소식은 끔찍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눈물은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철거민들이 불법을 저지르며 과격시위를 벌였다는 경찰이나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믿겠습니다. 외부의 '불순세력'이 끼어들어 폭력시위를 주도했다는 극우신문들의 보도도 사실로 받아들이고요. 그렇다고 사람을 6명이나 죽게 한 국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교통혼잡을 초래하는 과격시위나 폭력시위가 문제라면, 살인행위로 이어지는 과격진압이나 폭력진압은 훨씬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나라 위정자들이나 언론인들은 폭력에 대해 오도하거나 왜곡하는 버릇을 굳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흔히 폭력의 개념을 불법적이거나 공인되지 않는 무력의 사용으로만 규정하거든요.


 서민들을 비롯한 피지배층은 그들이 처한 부당하거나 불우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가끔' 그리고 '비효과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지만, 위정자들과 자본가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항상' 그리고 '매우 효과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 과정에서 피지배층 또는 아래로부터의 폭력은 국지적이고 일시적이어서 쉽게 눈에 띄고 불법행위로 간주되는 반면, 지배층 또는 위로부터의 폭력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으며 정당하다고 묵인되기 쉬운 게 특징입니다.


 위정자들이나 언론인들이 흔히 말하기를 선진국에서는 폭력시위가 없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라에서는 시위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우리처럼 심각하게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한사코 외면합니다. 자신들은 선진국의 정치나 언론 수준에 까마득하게 떨어져 있으면서 그것을 개선하려는 시위의 수준만 탓하는 셈이지요.


 개방적인 민주국가에서는 여론수렴이 잘되기 때문에 굳이 시위를 벌일 일이 적고, 시위를 하더라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할 필요나 이유가 없습니다.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는 시위에 대한 처벌이 너무 혹독하기 때문에 평화적이든 폭력적이든 시위가 거의 일어날 수 없고요. 그런데 완전하게 개방된 민주국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전적으로 폐쇄된 독재국가도 아닌 우리나라와 같이 어정쩡한 사회에서는 민의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고, 정당한 집회나 평화적 시위까지 아예 막으려고 하니 폭력으로 치달을 여지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한편, 위정자들은 경우에 따라 폭력시위를 부추기거나 일부러 방치할 때도 있습니다. 그를 통해 여론을 유리하게 조작하면서 폭력정치와 독재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최고권력자가 그런 폭력과 독재를 선호하는 한 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며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어야 할 '민중의 지팡이'는 사라지고 국민을 적으로 삼는 '권력의 개'만 양산되지 않을까요? 촛불시위 진압과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보듯, 일부 경찰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본질이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2009년 1월 21일, 미국에서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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