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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멍청한 짓거리를
  글쓴이 : 이재봉     날짜 : 08-10-24 10:28     조회 : 1998    

 

오체투지 (五體投地).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몸의 다섯 부분을 땅에 던진다는 말이니 양쪽 무릎과 양쪽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땅에 닿게 하는 인사법이다. 원래 불교에서 절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교만이나 거만 또는 오만을 버리기 위한 것이란다. 귀중한 몸을 더러운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신을 한없이 낮춤으로써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예법이랄까.


이러한 오체투지로 절하고 기도하며 남쪽 지리산에서 북녘 묘향산까지 몇 달 동안 기어가겠다는 무모한 사람들이 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그들이 지난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할 때부터 하루쯤 동참해야겠다는 맘을 먹고 있던 터에, 마침 10월 11일 토요일 전주 치명자산 앞을 지난다는 소식을 접했다.


왜 그렇게 멍청한 짓거리를 해야 하는지 잠시나마 체험해보고 싶었다. 겉으로는 좀 겸손한 체하면서도 속으로는 꽤 건방진 나 자신을 억지로라도 낮추어보자는 심보도 발동했다.


순례 시작 전 30명 안팎의 참가자들이 빙 둘러서서 자기소개를 한다. “익산에 살고 있는 이재봉”이라는 내 소개에 아는 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좀 허전하다. “원광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재봉”이라고 말했으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라도 한둘 있을 텐데 ..... 특히 저 앞에 서있는 문규현 신부가 날 몰라보는 게 섭섭하다. 작년에 그의 초청으로 그의 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에게 강연도 하고 몇 차례 만나기도 했는데 ..... 벌써 잘난 체하며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는 거다. 하기야 날 몰라보는 게 다행이지, 아는 체하면 내 멋대로 행동하기 어려울 것 아닌가. 얼굴이 널리 알려지는지는 게 부담스러워 TV 출연을 거부한다면서도 사람들이 날 몰라주는 데 허전함이나 섭섭함을 느끼고 있으니 난 역시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대여섯 걸음을 걷다가 땅바닥에 엎드린다. 먼저 무릎을 꿇고 손을 짚고 머리를 대야 하는데, 나는 무릎을 다칠까봐 손을 먼저 짚고 쫙 엎드려버린다. 몇 차례 해보니 요령이 생겨 일어나면서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게 되고 이렇게 합장하는 자세로 5-6보 걷게 된다. 그래도 마음이 비워지거나 겸손해지지는 않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힘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팔굽혀펴기를 100번 정도 하고 집에서 학교까지 6km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며 마라톤 풀코스 42km를 완주해낸 체력과 끈기를 지니고 있으니 하루 종일 해도 힘들진 않을 것 같다. 아, 또 잘난 체


아스팔트 위에 엎드리기도 하고 자갈밭에 엎드리기도 한다. 누가 뱉어놓은 껌이 입술에 닿기도 하고, 돌멩이들 사이로 삐죽 솟아난 잡초가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도 더럽거나 불쾌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허, 이젠 마음이 비워진 걸까. 말라붙은 지렁이 시체를 보고도 얼굴을 돌리지 않게 되고, 돌 부스러기들이 이마에 주렁주렁 붙는 것은 오히려 재미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는가. 속도로 경쟁한다는 시대에 날지는 못할망정 엎어지면서 걸어가다니. 읽을거리와 써야 할 글이 많이 밀린 터에 이토록 비생산적인 짓을. 왜 마음을 비워야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 아니면 사회를 위해? 누구에게 겸손해져야 할까. 자연에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 환경보호를 위해, 아니면 평화와 통일을 위해? 누구를 미워하지 말아야 할까. 청와대나 국회에서 거들먹거리는 정치인들을, 아니면 전쟁을 일삼는 미국 위정자들을?


기껏 두어 시간 만에 그 날 일정은 끝났다. 그로부터 2주가 흐른 오늘까지 내 맘은 조금도 비워지지 않고 겸손해지지도 않았음을 느낀다. 오체투지 체험이 도로 아미타불이랄까.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두 가지. 하나는, 차가 없어도 서럽거나 불편하다는 생각 없이 더욱 가볍고 즐거운 맘으로 걷거나 자전거로 출퇴근하게 된 것. 몇 백km를 기어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까짓 6km를 걷지 못하랴 하면서 비를 맞으면서도 걷게 된다. 남들 보기엔 청승이겠지만. 다른 하나는, 나보다 가진 것 많고 힘센 권력자들에게는 더 건방지게 비판하고 거세게 저항하더라도, 나보다 덜 갖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더 낮추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 그러면서 내년 4-5월 청와대나 국회 앞에서 다시 한 번 온 몸을 땅에 던져보는 모습을 그려본다. 지난여름 촛불 시위에 참가하지 못한 죄를 내년 봄 오체투지 시위를 통해 조금이라도 씻게 되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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