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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를 다시 짚어보며
  글쓴이 :      날짜 : 16-12-17 21:36     조회 : 2454    

박근혜를 다시 짚어보며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1026일 아침부터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날이 무슨 날인지 물었다. 한 학생이 10.26 기념일이라고 대답했다.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죽은 날이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총에 맞아죽은 날이기도 하다. 일본 제국의 총리를 지낸 조선 침략의 원흉과 일본 천황에 충성을 서약했던 친일 독재자의 제삿날이 70년의 시차를 두고 겹친다. 이에 덧붙여 2016년 그 독재자의 딸이 정치적으로 죽은 날이기도 하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종식일과 박근혜 여왕독재가 실질적으로 끝난 날이 37년의 시차를 두고 겹치는 것도 흥미롭다. 1026일은 역사적으로 참 의미 있는 날인 것이다. 이러한 10.26을 전후로 거의 온 국민이 허탈해하고 참담해하며 분노한다. 그러나 난 몹시 흐뭇하고 뿌듯하며 안심하게 된다. 2012년부터 박근혜와 다음과 같은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첫째, 20125“5.16쿠데타 51주년에 생각해보는 박정희와 박근혜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박정희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그의 딸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히고 있다. 만약 역사 왜곡이 없었다면 이게 가능할까? 박정희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절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장교가 되었던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역사책에 실렸어도 그의 인기가 높을까? 해방 후 미군정에서는 남로당원으로 암약하다 이른바 여수.순천 반란사건으로 체포되자 동료들을 밀고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구한 배신자요 변절자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면 그가 존경받을 수 있을까? 19615월 민주정부를 뒤엎고 쿠데타를 일으켜 197910월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거의 20년 동안 자유와 인권을 혹독하게 짓밟았던 군사독재자였다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졌다면 그의 딸까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1980년대 폐지된 연좌제를 다시 불러올 생각은 없다. 아버지가 일본군장교를 지낸 친일파였고 남로당원 출신의 배신자요 변절자였으며 군사독재자였기 때문에 딸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집권할 때 저질렀던 역사왜곡을 딸이 정권을 잡으면 조금이라도 바로잡기는커녕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겠는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다.”

 

예상대로 박근혜는 20132월 대통령 자리에 올라 반년도 지나지 않아 교육 현장에서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역사를 더 왜곡하기 시작했다. 201510좌편향된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겠다면서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다. 다음 달엔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진짜 혼이 없고 비정상적인 말로 국정 역사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난 다음과 같이 강연하고 다녔다.

 

는 연좌제에 반대합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친족에까지 범죄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이죠. 자식이나 손주가 부모나 조부모를 선택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박근혜가 친일파나 독재자의 딸이라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엔 반대했습니다. 빨갱이의 자손들이든 친일파의 자손들이든 능력과 도덕성을 갖추었으면 어느 자리에든 오를 수 있어야죠. 그러나 그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반대하고 우려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본 앞잡이, 군사쿠데타, 유신독재 등 아버지의 죄악을 씻어주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며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지 않겠느냐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우려가 요즘 현실로 되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새누리당을 앞세워 뜬금없고 무리하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지요. 대통령과 여당대표 등 친일파의 자손들이 권력을 잡은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들이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해 친일 및 독재와 관련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기필코 막아야 합니다. 역사 왜곡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요 천벌을 받을 짓이잖아요.”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곡학아세하는 무리들을 앞세워 밀실에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왔다. 이젠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와 새누리당 쪽에서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 비밀광복군이었다는 궤변까지 나온다. 이런 터에 여왕독재가 실질적으로 끝남으로써 끔찍한 범죄가 더 이상 저질러지기 어렵게 되었으니 참 다행스럽다. 아직 부역자들이 여기저기 남아있기에 방심은 금물이지만.

 

둘째, 201212월 대선을 며칠 앞두고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애 좀 썼다. 젊은이들이 박근혜를 반대하겠지만 투표장에 잘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몸담고 있는 원광대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맛있는 점심 쏩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원광대 모든 구성원들에게 점심을 사겠습니다. 조건은 딱 하나, 이번 대통령선거에 투표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민주와 경제발전, 그리고 사회복지와 평화통일을 위해 정치에 관심 갖고 반드시 투표하시기를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투표했다는 증거를 갖고 교직원식당으로 오시면 제가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겠습니다.”

 

바로 다음날 멀리 여행하던 중 전북 선거관리위원회의 전화를 받았다. 교내에서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지닌 교수가 신고했던 모양이다. 내 글이 선거법에 위반되니 삭제하라고 했다. 선거법에 따르면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괜찮지만 금품을 제공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식당 주인들 가운데 투표하면 밥 한 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경우도 많잖느냐면서 따졌더니 식당 홍보 차원에서 하는 것은 괜찮아도 일반인들은 위법이라고 했다.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악법은 지키기보다는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온 터라, 그냥 물러서기 싫어 가까이 지내는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내가 강행해서 선거법 위반으로 걸려들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면 오히려 젊은이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어 투표율을 더 높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만약 박근혜가 당선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을 테니 자제하라고 충고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전북 선관위에서 두 번이나 더 전화를 걸어왔다. 내 글에 대한 조회 수가 계속 늘고 있으니 당장 삭제하라고 위협하다시피 다그쳤다. 아마 원광대학교 게시판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된 것 같았다. 한편, 내 이메일을 받아본 한겨레기자가 즉시 전화로 취재해 바로 다음날 기사로 싣자 그 기사를 본 KBS TV 기자는 인터뷰를 요청하고 한 인터넷신문 기자도 취재했다.

 

내가 워낙 졸장부라 감옥에 갈 용기는 부족하면서도 부당한 공권력에 굴복하기 싫은 오기는 넘쳐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다음과 같은 글을 다시 올렸다. “그냥 교직원식당에 가서 내 이름 대고 식사하세요. 투표했다는 증거 필요 없습니다. 선거와 관련 없이 사랑하는 학생들이 기말고사 치르느라 고생했으니 위로 점심을 내겠다는 것이지요. 만약 인원이 넘쳐 밥이 부족해 당일 먹지 못하게 되면, 내년 봄 축제 중에 이자까지 덧붙여 맛있는 술을 곁들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이 사연을 들은 분들이 점심값을 분담하고 싶다며 후원금을 보내왔다. 며칠 후 식당에 외상값 갚으러 갔더니 50만원 정도. 100여명이 다녀간 것이다. 후원금이 그보다 많았으니 나는 말로만 점심을 쏘고 비용은 한 푼도 부담하지 않은 셈이었다.

셋째, 201212, 위와 같이 눈물겹도록 박근혜 낙선운동을 벌였지만 그녀가 당선됐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노골적 부정선거의 결과였다. 왠지 박근혜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무슨 자료를 갖고 객관적 예측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사항이었다.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박근혜+최순실의 희망처럼 말이다. 그러나 20144월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파렴치를 만천하에 드러낸 세월호 참사 직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조차 새누리당이 압승했다. 그 후 치러진 모든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이 이겼다. 이런 터에 20164월 총선을 앞두고는 야당이 분열됐다. 박근혜의 영구집권이 가능할 것 같았다.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인터넷 언론과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지금까지 선거의 여왕이 펼치는 분열의 통치술은 소름끼칠 만큼 치밀했고 야권은 맥없이 무어졌다. 이석기를 잡아가고 통진당을 해산할 때, 이른바 진보 세력조차 자신들은 종북이 아니라며 오히려 고소해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내칠 때, 자신들은 불법이 아니라며 모른 체했다. 민주노총을 폭력 데모한다고 가둘 때, 자신들은 폭력을 옹호하지 않는다며 가만있었다. 이렇듯 야성이 강한 통진당, 전교조, 민주노총이 정권에 의해 차례대로 해체되거나 무력해진 뒤 말랑말랑한 야당은 스스로 쪼개졌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시체장사한다며 비난하는 비인간적 부류를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위안부들을 매춘으로 매도하며 가슴을 다시 찢는 비인도적 집단을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친일을 미화하려는 비상식적 계파를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재벌을 편들며 서민을 죽이는 비합리적 파벌을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을 장악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비민주적 정당을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북 갈등을 증폭시키며 전쟁불사를 외치는 비평화적 세력을 심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절대 질 수 없는 선거판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통해 보듯 각종 통치기구와 정보기관 등을 선거에 활용한다. 정권에 장악된 거의 모든 신문방송들은 새누리당에 불리하거나 야당에 유리한 뉴스는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박근혜 정권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이 30-40%라고 하지 않은가. 우선 새누리당이 헌법을 뜯어고칠 수 있는 국회 200석 이상 당선은 물론 국회법을 개악할 수 있는 과반 득표까지 막아내자.”

 

지난 413, 정말 예상 밖의 선거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의 참패였다. 헌법을 뜯어고칠 수 있는 200석이나 국회선진화법을 팽개칠 수 있는 180석은커녕 다수결로 밀어붙일 수 있는 150석도 얻지 못했다. 과반 붕괴뿐만 아니라 제1당 자리마저 빼앗겼다. 박근혜의 영구집권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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